1841년(헌종7) 6월 18일 족종(族從) 이원식(李源植)이 탐라현령으로 있는 이원조에게 보낸 간찰. 바다 건너 멀리서 정사(政事)를 보고 있어 쉽게 소식을 접할 수 없는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하고, 장습(瘴濕)으로 몸은 상하지 않았는지 걱정하였다. 백씨 형주(伯氏兄主)와 조카도 잘 있는지 묻고, 빗을 보내주어 고마움을 전하는 내용.
내용 및 특징
1841년(헌종7) 6월 18일 족종(族從) 이원식(李源植)이 멀리 탐라목사으로 있는 이원조에게 보낸 간찰이다. 이전 해 12월에 제주모슬포(摹瑟浦)앞 가파도(加波島)에서 영국 군함 2척이 정박하여 발포하고 가축을 약탈해가는 사태가 발생하였는데, 조정에서는 책임을 물어 이전제주목사를 파직하고 후임에 이원조를 제수하였다.
그는 강릉의 미진한 업무를 마무리하고 출발하여 파도를 피하여 3개월 만에 임지에 도착하였다. 우선 포화에 놀란 민심을 수습하고 조정에 원조를 요청하여 기민을 구제하였으며, 군비를 확충하여 유사시에 대비하기위한 정무에 바빴으리라 짐작된다.
바다 건너 멀리서 정사를 보고 있어 쉽게 소식을 접할 수 없는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하고 장습(瘴濕)으로 몸은 상하지 않았는지 걱정하고, 백씨 형주(伯氏兄主)와 조카도 모두 건강하게 천리 밖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는지 물었다. 고향으로 편지를 자주 보내지 않으니 혹 고향생각을 완전히 잊었는지를 묻고, 자신은 묵은 병 때문에 봉정(峯亭)에서 편하게 지내지만 상대하는 자는 다만 몇 사람의 노인뿐이니 수신자와 함께하는 것만 못함을 토로하였다.
홍수 때문에 벼농사가 힘들 것 같았으나 다행히 비가 그쳐 어느 정도 희망이 보였는데, 최근에는 또 가뭄이 심해 가을걷이는 두고 봐야 알 수 있음을 전하고, 끝으로 하회 형주(河回兄主)는 언제 돌아오는지 물으면서 빗 3자루를 보내 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서찰에는 연도 표시가 없으나 서찰의 내용과 『응와 연보』를 토대로 1841년으로 추정하였다.
자료적 가치
가파도(加波島)에 영국 군함이 정박하여 발포하고 가축을 약탈해가는 어려운 사태가 발생하였을 때 탐라목사에 제수된 것은 강릉에서의 「삼정구폐소(三政求弊所)」를 설치하여 폐정을 개혁한 탁월한 능력이 조정에서 인정받았기 때문임을 알 수 있고, 그가 남긴 제주와 관련한 글들이 이를 증명할 수 있으며, 바쁜 와중에도 지우나 친지들에게 안부를 전하고 작은 선물이나마 빗을 보내는 인간미를 느낄 수 있다.
『응와 이원조의 삶과 학문』, 경상북도대학교 퇴계연구소, 역락, 2006.
「凝窩先生年譜」, 『凝窩全集』, 이원조, 여강출판사, 1986
1차 집필자: 심수철 , 2차 집필자 : 김상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