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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6년 정기선(鄭基善)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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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정기선, 이원조
작성지역 충청남도 홍성군 결성면
작성시기 1826
형태사항 크기: 39.5 X 50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안동대학교 박물관 / 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

안내정보

1826년 정기선(鄭基善) 서간(書簡)
1826년(순조26) 9월 13일에 정기선(鄭基善)결성현감(結成縣監)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간찰. 상대방이 자신의 집을 방문해준데 대한 고마움과, 아전들의 도움으로 산소를 구할 수 있었으며, 새로운 산소를 조성을 위하여 관아를 수리하는 일에 산지기의 역(役)을 면제해 달라는 내용.
『응와 이원조의 삶과 학문』, 경상북도대학교 퇴계연구소, 역락, 2006.
「凝窩先生年譜」, 『凝窩全集』, 이원조, 여강출판사, 1986
1차 집필자: 심수철 , 2차 집필자 : 김상환

상세정보

1826년(순조26) 9월 13일에 정기선(鄭基善)결성현감(結成縣監)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간찰. 상대방이 자신의 집을 방문해준데 대한 고마움과, 아전들의 도움으로 산소를 구할 수 있었으며, 새로운 산소를 조성을 위하여 관아를 수리하는 일에 산지기의 역(役)을 면제해 달라는 내용.
내용 및 특징
1826년(순조26) 9월 13일에 정기선(鄭基善)결성현감(結成縣監)으로 있던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간찰이다. 이원조는 이 해 5월에 부임하였다. 그는 일생동안 다섯 고을의 수령을 역임하였는데 지방관으로서는 첫 부임지였다. 내용은 본 고을에 부임하였을 때에는 마침 근친(覲親)갔기 때문에 찾아뵙지 못하였으며, 판여(板輿)의 행차도 함께 왔는지를 묻고, 반백(攀柏)의 애통함이 상로지감(霜露之感)으로 위로할 수 없어서 오마(五馬)가 돌아오는 것을 기다릴 수 없었던 심정을 전하였다. 봉자(鳳字)를 써 놓고 간 것을 보고는 곡진한 정이 보통사람과는 다름을 알았으며, 산소의 일은 박군(朴君)홍군(洪君)이 도와주고, 정ㆍ김 양리(鄭金兩吏)가 특별히 힘써서 새로운 산을 구할 수 있었던 고마움을 전하고, 또 새로운 산소를 조성하는 일과 관아를 수리하는 일, 산지기의 역(役)을 면하는 일 등이 겹쳐서 서면으로는 모두 말하기 어려움을 밝혔다. 그 동안의 전말을 좌수(座首)이방(吏房)에게 말하였으므로 사장(事狀)을 추문(推問)하여 바로잡아 줄 것을 부탁하고, 진전(陳田:묵은 밭)의 일은 이미 새로 부임한 도백(道伯)에게 고하여, 이미 정(鄭)ㆍ김(金) 두 아전에게 분부가 있었음을 밝히고, 내년 봄에 찾아뵙겠다는 내용이다. 피봉에 결성(結城)결성(潔城)으로 쓴 것은 피휘(避諱)한 것으로 보인다.
자료적 가치
선조를 잘 모시는 일이 최대 관심사였던 조선조에서는 특히 관아(官衙)의 송사(訟事)도 산송과 관련한 사건이 가장 많으며, 선조의 무덤과 관련하여서는 자손들이 가장 정성을 기울인다. 가 간찰도 선조의 산소를 구하기 위하여 도백(道伯)과 현감 등 아전에 이르기까지 백방으로 노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산소 조성을 위하여 관아(官牙)를 수리하는 일과 산지기의 부역을 면제해 달라는 부탁도 아끼지 않는다. 지방관으로서는 첫 부임한 이원조는 목민관의 자격으로 상대방을 방문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응와 이원조의 삶과 학문』, 경상북도대학교 퇴계연구소, 역락, 2006.
「凝窩先生年譜」, 『凝窩全集』, 이원조, 여강출판사, 1986
1차 집필자: 심수철 , 2차 집필자 : 김상환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26년 정기선(鄭基善) 서간(書簡)

[피봉]

수신, 潔城 明府下 執事
발신, 謹拜 上謝書 謹封

[본문]
秋氣總至 日勞瞻望 及到本
境 若將趍拜 適値
覲駕 未遂下悰 區區悵耿 如
何盡達 聞諸邑吏
還衙諒在不日 伏惟凉深
在途勞撼餘
政體動止 神護萬安
板輿行次 此時奉陪否 伏慰且
溯 民請暇展 楸慟洩攀柏
少慰霜露之感 而離親日久 未能
久滯 未待五馬之還留 此題鳳

之牘 其於情曲 當作何懷 實
卽尋常去留之悵 不相似也

山下事 厚蒙眷庇 隨
處曲軫 如朴洪諸君之賜眷
鄭金兩吏
之另護 新
山 凡百之得
以有情 此豈
可但以生色
言 私心感戢
無以爲比 而
但新山草創
百事茫然 又
不得不以一二
件事 仰煩
酬應 卽衙修
理釐正事 及
山直輩免役

事 而書不如面 無以詳陳顚末 故擧
其大略 詳及於座首吏房 幸須推問
事狀 以垂終始之惠 切仰切仰 陳田
入頉事 亦已酬酌於新道伯 且分付於
鄭金諸吏耳 此歲恐無一拜之
便 都留開春拜候 姑不備 伏惟
下察 上候書
丙戌 九月十三日 民鄭基善 上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