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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년 이영하(李瀯夏)가 이규진(李奎鎭)에게 보낸 서찰.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A01+KSM-XF.1819.0000-20090831.E47840231_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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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영하, 이규진
작성시기 1819
형태사항 크기: 33.5 X 37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안동대학교 박물관 / 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

안내정보

1819년 이영하(李瀯夏)가 이규진(李奎鎭)에게 보낸 서찰.
1819년(순조 19)이영하(李瀯夏)이규진(李奎鎭)에게 황기중(黃基中)을 부탁하는 내용의 서찰이다.
「凝窩 李源祚 先生 生平事蹟考」, 이세동, 『동방한문학12집』, 동방한문학회, 1996
1차 집필자 : 박상수, 2차 집필자 : 김상환

상세정보

1819년(순조 19)이영하(李瀯夏)이규진(李奎鎭)에게 황기중(黃基中)을 부탁하는 내용의 서찰.
내용 및 특징
1819년(순조 19)이영하(李瀯夏)이규진(李奎鎭)에게 황기중(黃基中)을 부탁하는 내용의 서찰이다. 지난번 답장으로 지금까지 위안이 되고 감사하였다고 하였다. 상대의 아들[令允]이 지나다 들러주었는데 오랫동안 심하게 춥다가 요사에 조금 따뜻해졌는데 여행은 잘 하셨는지 새로운 벼슬자리의 정사(政事)의 안부는 어떠한지 상대의 안부를 물었다. 또 오랜 폐단으로 그곳에 도착하여 개혁하리라는 것은 보지 않아도 보이는 듯 하다고 하면서 그리워하였다. 자신은 오랜 감기가 아직도 낫지 않았는데 대향(大享 : 종묘나 사직·영녕전에서 지내던 큰 제사)에 차임(差任)되어 아침에 예의(隸儀)의 반열에 나아갔다가 돌아오자마자 피곤하여 쓰러졌다고 하였다. 상대에게 전할 구체적인 사항은 상대가 다스리고 있는 지역의 서면(西面)에 살고 있는 황기중(黃基中)은 바로 경내(境內)의 아사(雅士)로 자신이 관직생활을 할 때 가장 교분이 두터운 사람으로 담대멸명(澹臺滅明)이라 해도 해롭지 않을 사람으로 오늘 마침 자신이 서울에 들어와 부탁을 드린다며 일마다 잘 례(例)에서 벗어나 잘 돌보아주기를 바란다는 부탁을 하였다. 자신이 오랫동안 벼슬에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말들이 종종 있기는 하지만 도리가 아닌 일로 반드시 말하지 않으니 믿고 헤아려 달라고 하였다.
자료적 가치
이 간찰을 통해 이영하이규진에게 황기중을 부탁한 사실과 당시 나라에 큰 제사가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이원조, 『凝窩全集』, 여강출판사, 1986
「凝窩 李源祚 先生 生平事蹟考」, 이세동, 『동방한문학12집』, 동방한문학회, 1996
1차 집필자 : 박상수, 2차 집필자 : 김상환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19년 이영하(李瀯夏)가 이규진(李奎鎭)에게 보낸 서찰.

[피봉]
栗川政堂 執事入納
芹洞李友候書 謹封
[본문]
頃日惠覆 ?今慰荷
令允歷訪 尤用多時甚寒之餘 近日稍暄
行李萬吉 而
新?政候 起居若何 積弊
之原 下車革倒 不見如見
戀切區區 ?念 弟 久感尙不
解 又差大享 朝赴隸?
班 歸卽憊頓 悶憐奈何
就 治下西面黃基中
卽境內雅士也 弟在官時 最所
交厚 不害爲澹臺滅明
適其弟之入京 玆以仰托
幸隨事拔例斗護 生此顔色 切

仰 弟以作官稍久之故 此等之
言 當種種有之 而違理之事
必不言之 可以信諒矣 餘不

備 伏惟
兄下照

己卯陽月初四日 弟 瀯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