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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진(李奎鎭)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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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규진, 이민겸
형태사항 크기: 26 X 41.5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안동대학교 박물관 / 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

안내정보

이규진(李奎鎭) 서간(書簡)
이규진(李奎鎭)이 아버지 이민겸(李敏謙)에게 보낸 서찰로, 서울에서 관직생활을 하면서 여러 가지 일어나는 정치변화를 소상히 적었다.
「凝窩 李源祚 先生 生平事蹟考」, 이세동, 『동방한문학12집』,동방한문학회, 1996
1차 집필자 : 박상수, 2차 집필자 : 김상환

상세정보

이규진(李奎鎭)이 아버지 이민겸(李敏謙)에게 보낸 서찰로, 서울에서 관직생활을 하면서 여러 가지 일어나는 정치변화를 소상히 적었다.
내용 및 특징
이규진(李奎鎭)이 아버지 이민겸(李敏謙)에게 보낸 서찰로, 서울에서 관직생활을 하면서 여러 가지 일어나는 정치변화를 소상히 적었다. 이번 달 7일 군뢰(軍牢 : 군대에서 죄인을 다루는 군졸)봉원(鳳元)편에 서찰을 올렸는데 받아 보셨으리라 생각이 든다고 하였다. 15일 아침 관편(官便)을 통해 1일 날 보낸 서찰을 받고 매우 기뻤다고 하였다. 기후가 한결같고 일상이 모두 편안하다는 것을 알고는 비로소 편안히 나고 먹을 수 있었다고 하였다. 번군(番軍)의 인편이 수일 안으로 있을 듯하여 발돋움하여 기다렸는데 편안하다는 소식을 듣고는 여러 날의 바람이 풀렸다고 하였다. 자주 인편을 찾아 서찰을 부쳐 자신의 근심과 염려를 풀어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아들인 자신은 객중에 자고 먹는 것은 그럭저럭 괜찮고 거처 역시 편안하다고 하였다. 그렇지만 마화(馬火)를 일으키는 정사(政事)에 들어간 돈이 적지 않은데 이 역시 작은 연고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장전(長銓 : 이조판서)에게 소장을 올려 체직을 하고 싶은데 비답이 독실하여 형편상 대정(大政 : 도목정사)은 지나야 할 것이라고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삼전(三銓 : 이조참의)이 마음대로 하는 것이 마치 철옹성(鐵甕城)과 같으니 〇정(〇政)전에 새로운 통보를 낼 것이라고 하였다. 잘 달리는 사람이 앞에 있고 뚫기를 잘하는 사람들이 서로 해치는데 수수방관(袖手傍觀)하는 것 외에 따로 좋은 계책이 없다고 하였다. 실록서사랑청(實錄書寫郎廳)으로 천거하고 싶은 사람은 아직 통보하지 않고 있지만 서로 지지한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하였다. 말은 우선은 병없이 잘 타고 이달 초부터 지금까지 눈이 내려 출입하는 날이 매우 적어 고민이라고 하였다. 이분순(李賁淳)이 통독(通讀 : 조선 시대 성균관 대사성(大司成)이 매년 서울과 지방의 유생들에게 제술(製述)과 강서(講書)로 시험을 보이던, 문과 초시(文科初試)의 한 가지임)을 보려고 상경하였고 기타의 영남의 유생들이 자주 와서 만나는 자들 모두 고생스러운 지경이라고 하였다. 암회(岩回)가 많은 짐을 싣고서 상경한다고 들었고 한집(韓集 : 韓愈文集)을 이편에 보냈는지 물었다. 지난번 서찰에 이미 개략적인 것은 다 알았지만 이 또한 믿을 만한 인편이 아니라 우선은 빼놓는다고 하였다. 면천수령(沔川守令)이 요사이 입성한다고 하였는데 이 말은 여수(汝受)에게 전하였다고 하였다. 지난번 인편에 약을 보낸 것은 과연 받았는지 환약의 진짜 재료를 사방으로 구해도 구할 수 없다고 하였다. 김태〇순(金台〇淳)이 나를 한 번 만나보려 하는데 이해의 사이를 생각해 보아 만날 것이라고 하였다. 수응하고 싶은 마음 하루에도 서 너 번씩 생겨나기도 하고 그만 두고 돌아가고 싶기는 하지만 아버지의 마음을 번거롭게 하겠기에 이 역시 오랜 병은 아니라고 하였다. 박영수(朴永叟)한덕보(韓德甫)가 동당시관(東堂試官)으로 또 대간(臺諫)의 탄핵을 받아 정원(政院)을 출입하는 자들은 다만 성정현(成鼎鉉) 한 사람밖에 없다고 하였다. 부사(副使)는 아직 오지 않았고 이휴길(李休吉)은 서품(敍品)이 되지 않아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다고 하였다. 혹시라도 다시 출발하게 된다면 사람을 보내 통보하기를 천만 바란다며 지금까지 정든 곳이라 고생스러움을 계산하지 않고 지냈는데 비록 찰방(察訪)이라도 인끈을 차고 돌아가 부모님을 모시는 것이 능사일 것이니 세상에 자신처럼 가련한 사람도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김근순(金近淳)처럼 고을의 수령으로 가는 어려움이 이와 같다고 하였다. 언제 있었던 일인지 정확히 알 길이 없다. 사건 역시 두드러지게 드러난 일이 없어 정확한 연대를 추증하기 어렵다.
자료적 가치
이 간찰을 통하여 당시 정치상황의 단면으로나마 확인이 가능하다.
이원조, 『凝窩全集』,여강출판사, 1986
「凝窩 李源祚 先生 生平事蹟考」, 이세동, 『동방한문학12집』,동방한문학회, 1996
「凝窩 李源祚 先生 生平事蹟考」, 전용신, 『韓國古地名辭典』,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93
1차 집필자 : 박상수, 2차 집필자 : 김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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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진(李奎鎭) 서간(書簡)

東京 政座下執事入納
東泉罪下生 上候疏 稽顙謹封
[본문]
父主前 上白是
今月初七日 軍牢鳳元便 上書 想已入去矣 十五朝 因
官便 伏承初一日 發下書 顚倒欣喜 因伏審〇〇一耳
氣候一樣 凡常都安 是日 方始穩眠 而甘飰矣
番軍便 似在數日內 亦方跂足而待 得一安信
欣釋累日幸 伏望 數數討便付書 以破此憂慮之
忱 千萬千萬 子 客中 眠食粗安 居處亦穩便 而但
興馬火政 所費不訾 此亦非細故也 奈何 長銓
陳疏 欲遞 而批旨勤篤 勢將捱過大政云矣
而三銓自在 而隔若鐵甕城 〇政前 又出新通
而善走者 居前 巧穿者 相擠斂 袖手傍觀之外
無善策矣 聞有以實錄書寫郞廳 欲薦者 而
以未通 爲相持云耳 鬣者 姑無病善騎 而自月
初至今 雨雪 出入之日 絶少可悶 李賁淳 欲觀
通讀 又上來 其他嶺儒之頻頻來見者 皆苦境矣
岩回聞欲以駄高卜上來云 韓集 或送於此便耶
前書 已盡梗槪 此又非信便 故姑闕之 沔川守
近入城云 此言傳于汝受也 前便藥封 果入

去否 丸藥眞材 四求難得 奈何 金台〇淳
要我一見 而見不見 居利害間 方商量耳 欲

酬之心 一日三出 而無端擺歸
必致激惱 故此亦不敢宿症

朴永叟 韓德甫 以東堂試官 又遭臺彈 出入政院者

鼎鉉
一人而已 副使 尙不來 李休吉
亦不敍爻象寂廖

如或復發 卽專人通之 千萬伏望之遠外 焦慮人 所難
堪 到今情地 不計燥濕 雖殘郵賤丞 佩印歸覲 爲能事
而世莫我憐 奈何奈何 如金近淳者 皆乞郡一麾之難
固若是矣

十月十六日 朝 子奎鎭白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