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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년 부(父)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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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형태사항 크기: 17.5 X 61.5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산청 단계 상산김씨 김인섭후손가 / 경상남도 산청군 신등면 단계리
현소장처: 안동대학교 박물관 / 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

안내정보

무진년 부(父) 서간(書簡)
무진년 7월 3일에 아버지가 객지에 나가 있는 아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우선 아들이 침을 맞고 조섭하다가 집으로 돌아온 지 수십일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면서, 천리 먼 길을 가서 병을 고치는 것도 크게 옳지 않은데다 아직 어버이에게 서신을 보내어 허락도 받지 않은 처지로 얼굴에 침을 맞는다는 것은 더욱 좋지 않은 생각임을 타이르고 있다. 또 자신은 침을 두려워하여 남이 침을 맞는 것도 눈 뜨고 못보는데 어떻게 이런 경솔한 행동을 했느냐고 나무라고 다시 이런 행동을 하지 말고 즉시 집으로 돌아갈 것을 명하였다. 또 그 사람과 동행하는 것은 아직 생각하지 못했는데, 차비와 숙식비는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를 묻고, 일체를 다 거절하되 객지에서 조리하겠다고 호언 하던 것이 여의치 못하게 되었다 하면서 겸손한 말로 사양할 것을 명하는 내용이 있다.
1차 집필자: 김남규, 2차 집필자: 오덕훈

상세정보

무진년 7월 3일에 아버지가 객지에 나가 있는 아들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무진년 7월 3일에 아버지가 객지에 나가 있는 아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우선 아들이 침을 맞고 조섭하다가 집으로 돌아온 지 수십일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면서, 천리 먼 길을 가서 병을 고치는 것도 크게 옳지 않은데다 아직 어버이에게 서신을 보내어 허락도 받지 않은 처지로 얼굴에 침을 맞는다는 것은 더욱 좋지 않은 생각임을 타이르고 있다. 또 자신은 침을 두려워하여 남이 침을 맞는 것도 눈 뜨고 못보는데 어떻게 이런 경솔한 행동을 했느냐고 나무라고 다시 이런 행동을 하지 말고 즉시 집으로 돌아갈 것을 명하였다. 또 그 사람과 동행하는 것은 아직 생각하지 못했는데, 차비와 숙식비는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를 묻고, 일체를 다 거절하되 객지에서 조리하겠다고 호언 하던 것이 여의치 못하게 되었다 하면서 겸손한 말로 사양할 것을 명하는 내용이 있다. 새벽에 일어나 몸소 제질(弟姪)과 아손(兒孫)들을 거느리고 일을 처리해 나가고 있는데, 수신인인 아들에게는 곁에 없어도 별 불편이 없노라고 위로하였고, 정유보(丁酉譜)와 관련해서는 중요한 사안이니만큼 상세히 설명하고 치밀하게 접근할 것을 명하는 내용도 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정유보는 선군(先君)으로부터 나왔는데, 이때에 팔을 끌어당기면서 말리던 사람들이 곁에서 백방으로 억제하였으므로 또한 독단할 수 없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만족스럽지 못한 곳이 없지 않다면서, 접때 성흠(性欽)의 말이 큰 파 작은 파 어른들이라고 호를 허다하게 사용하였기 때문에 또한 그에 따른다고 한다는데, 천리 멀리서 삼가 타투지 말기를 명하였다. 그리고 보청의 여러 족씨들께서 오르기를 허락하면 조용히 여러 번 말씀드리는 것이 좋은데, 폐일언하면, 번잡함이 심하면 오래 멀리 전할 수 없으니 간략함을 쫓아서 처리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자신이 있는 곳은 6월 11일 비온 뒤로 계속 가물어 밭 두둑이 허옇게 갈라지고 있어서 머슴들이 밤마다 들잠을 잔다는 힘든 상황과, 인심은 사나워지고 곡가(穀價)는 정조(正租)는 칠전(七錢)이고 섞인 것은 육전(六錢) 팔리(八里)인데 권안(權安) 아재가 와서 약속하기를 일간 시세를 봐서 모두 내어 줄 계획이라는 말, 앞뒤 편지에 추수에 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이 없으니 경기 지방에는 비가 자주자주 오는지 어떤지 알 수가 없다는 말 등을 썼다. 또 평지(坪地) 족숙과 족형들이 모두 편지를 보내지 않으니 이렇게 말하고 내 편지를 삼가 내보이지 말 것을 시키고, 삼가고 주밀한 것이 고금을 통해서 세상을 살아가는 묘법이라는 점을 환기했다. 오리(梧里)이자응(李子應)이 요절하여 사람이 왔는데, 장삿날이 금월 초 엿새라 한다. 조손(祖孫)의 편지를 동봉하여 체신에 부쳤고 일간에 부칠 돈의 금액을 토론할 계획이니, 기다렸다는 듯하지 말고 삼가 물건을 바꾸거나 섞어서 남용하지 말 것을 명하였다.
자료적 가치
『慶南文化硏究』24집,「진주 지역 문집의 현황과 그 의미」, 이상필, 경상남도문화연구소 2003
『남명학파의 형성과 전개』, 이상필, 와우[예맥커뮤니케이션] 2005.
『晋陽續誌』, 성여신, 남명학고문헌시스템
『端磎集』, 김인섭, 남명학고문헌시스템
『琴臯集』, 성석근, 남명학고문헌시스템
1차 집필자: 김남규, 2차 집필자: 오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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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무진년 부(父) 서간(書簡)

家兒 旅次 答書
卄八日書 昨日午後來到 可知千里不遠 而
伊邇也 第悉其間 汝受鍼調攝 歸家
遷就 至數十日云 胡爲乎如是 甚亦思
行之也 千里招邸治病 大爲不可 且未經
親信 而聽其一言 受鍼面上 尤爲不可 吾本
此畏鍼 不能目見人受鍼 而胡乃如是輕先行
之乎 從今更勿犯此 卽卽還家好好 且與
其人同行 此未之思也 車費與浮費 將從
何出乎 一念拒絶之 而以好言客地調理 不得
如意 以此遜言 謝之也 前書有題?諱辰下
來意 故不付郵書 且無故生費 雖些少
豈不惜乎 遠外事 無消息喜消息也
毋論在家在外 以是處之可可 曉起躬率
弟姪孫兒輩將事 汝不在傍 是爲恝然耳 前
書雖略 以此意 言之于汝 而經歲經月未還
者 獨何爲哉 丁酉譜人云 出自先君 而是峕肘掣
忘克者 從傍百方沮抑 亦不得獨斷 到今不
滿意處 不爲無之耳 向來性欽之言 以伯仲
派家 先白許多用號 故亦從之云 千里遠地 愼勿
與之爭卞也 提學公下註脚 以舊住旅行 千萬
千萬 譜聽僉族氏許 乘從容累累言之爲可 而且
尙州校正人來不來 書中無及 其間未之上來
以此沁泄看之 爲經歲計耶 蔽一言曰 煩甚則不
能傳之久遠 從簡處之 甚好甚好 此中自六月
十一日雨後 連旱田疇白柝 家雇夜夜經宿
于野 人情嗷嗷 穀價正租七戔 雜則六戔八里 而
權安叔來約 日間勢 盡數出給爲計 前後書無
一言及年事 未知京畿頻頻雨來否 坪地族叔
族兄許 具未書 以此言之 而愼勿出示我書也
謹愼周密 通古今 行世妙法也 汝本不似汝父
輕發致人言 而客地與諸族日處 無故無用多
言 恐或失和氣故耳 精神都在丹丘齋 用舊
註頻頻出入譜所 而改張幾許 從優下送也
梧里 李子應夭慘 專人來赴 而入地在今初六日耳
祖孫書同封付遞 而日間當討付錢數爲計 勿若待
而愼勿濫用於貿易雜之也 允善此意 欲上
去 觀動靜而安得如意也 其意雖潛之改之 坪
地人若不呵禁用配 念之圖之云耳 擧家老幼
孩 皆平吉幸之 向來性欽云 從速而來 同行企之
遠書不能一一 姑此 惟冀善食善寢下來
以幾日到云 則當下送我鬣計耳 不多及
戊辰七月初三日朝 父 書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