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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일기(庚戌日記)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10+KSM-WM.1550.4717-20180630.0000000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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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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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서-일기
내용분류: 개인-생활-일기
작성주체 이교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
작성시기 1550
형태사항 크기: 24.8 X 18.2
판본: 필사본
수량: 1책 42면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도산 진성이씨 온계종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경술일기(庚戌日記)
이 일기는 퇴계 이황(李滉)의 형인 온계(溫溪) 이해(李瀣, 1496~1550)가 1544년(중종 39) 대사헌으로 있을 때 우의정 이기(李芑, 1476~1552)를 탄핵하여 강등시킨 일로 미움을 사서 마침내 경술년(1550, 명종 5) 이기의 하수인인 이무강(李無疆)의 무고로 혹독한 국문을 받고 갑산(甲山)으로 유배 가던 중에 죽게 되는 과정을 온계의 셋째 아들인 이교(李㝯, 1531~1595)가 사료로 사실을 보완하여 쓴 일기 형식의 기록이다.
1차 작성자 : 박세욱

상세정보

『경술일기(庚戌日記)』는 이해(李瀣)(1496~1550)가 이기(李芑)의 무고에 연루되어 죽음에 이르게 된 사건을 아들인 이교(李㝯)(1531~1595)가 기록한 일기로, 1550년(명종 5) 7월 16일부터 9월 3일까지의 기록과 12월 11일 장례하는 일, 1567년 10월 5일 주인공이 사면복권 되는 사료를 수록하고 있는데, 모두 32일간의 경과를 정리한 자료
『경술일기(庚戌日記)』의 기록은 필사본 42면에 수록되어 있는데, 면당 10행이고 쌍행의 주가 들어있다. 날짜별로 사건의 경위를 기록하고 있는데, 1550년(명종 5) 7월 16일부터, 17, 22, 23, 24, 25, 29일의 기사가 있고, 이후 8월 2일부터 16일까지의 과정이 빠짐없이 서술되어 있고, 다시 20일, 26일~29일까지의 간략한 기사가 보이고, 다시 달을 바꾸어 9월 1일에서 3일까지가 기재되어 있으며, 12월 11일 장례하는 일이 상세하게 기술되어있다. 마지막은 1567년 10월 5일 주인공이 사면복권 되는 사료를 수록하고 있다. 모두 32일간의 경과를 정리해둔 자료이다. 자료는 1550년(명종 5) 7월 16일부터 사헌부의 서리 임은손(林殷孫)이 찾아와 온계 이해(李瀣)가 이전 청홍도감사(淸洪道監司)로 있을 당시, 유신(惟新, 충주) 역당(逆黨)의 누락된 노비와 전답 등을 유신현에서 추쇄하고 첩보하게 하였으나, 이해가 무단히 본 주인에게 돌려 준 일을 추고한다는 사실을 통보하는 내용으로 시작된다.
이해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기록한 이 자료의 사건 발단은 1545년(인종 1) 1월에 대사헌 이해헌납 이치(李致)등이 이기(李芑, 1476~1552)를 우의정 임명에 반대하면서 강등된 앙심에서 비롯되었다. 이기이무강(李無疆)을 내세워 온계를 무고한 누명은 첫째, 청홍도감사로 재직할 당시 유신역당의 누락된 노비와 전답 등을 추쇄하고 첩보하라는 명을 어기고 전답재물들을 함부로 내어 주었다는 것, 둘째, 역당 구수담(具壽聃)과 붕비(朋比)하여 시비를 전도하고 인심을 어지럽게 했다는 것, 셋째, 고변(告變)하려는 최하손(崔賀孫)을 상달하지 못하도록 중간에서 장살(杖殺)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해명과 형추(刑推) 받는 과정에서의 주인공의 자세와 신원을 위한 자식들의 노력이 고스란히 기록되어있다.
8월 10일 같이 형을 받던 이치가 죽자, 형추가 누그러져 마침내 갑산(甲山)으로 유배가 결정된다. 장형의 손상으로 말을 멘 가마를 타고 가다가 8월 14일 양주(楊州)에서 이해는 죽음을 맞이한다. 이후 운구와 상례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그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친인척들의 조문이 기록되어 있다. 12월 11일 묘소에 장사를 지내는 것으로 사건 경위를 기술하는 내용은 끝이 나고, 이후 이교(李㝯)가 이 사건에 대한 발단과 경위를 총괄하고, 마지막으로 1567년(선조 즉위년)에 이 사건과 연루되어 유배 간 35명의 신원이 회복된 사료를 인용하므로 써 󰡔경술일기󰡕는 정리되어있다.
이 자료에 등장하는 중요 인물들의 간략한 사적을 정리하면, 자료에서 기술된 사건의 배경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먼저 저자의 부친이자 사건의 당사자인 이해(1496~1550)는 작은아버지 이우(李堣)에게 학문을 시작하여 1528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이후로 사간·정언 등을 거쳐 1541직제학에 올랐으며, 1544년에 첨지중추부사·대사헌·대사간·예조참판을 역임했다. 인종이 즉위한 뒤에도 계속 대사헌으로 있으면서 권신 이기를 우의정에 탁용(擢用)하려는 것을 반대하고 탄핵하였다. 1545년(명종 즉위년) 강원도관찰사에 이어 1547년에 황해도관찰사, 1549년에 청홍도관찰사를 거쳐 1550년에는 한성부우윤이 되었다. 그러나 이기의 심복인 사간 이무강의 탄핵을 받아 무고사건에 연좌된 구수담의 일파로 몰려 형추를 당하고 결국 귀양 가는 도중에 양주에서 병사하였다. 영주의 삼봉서원(三峰書院), 예안의 청계서원(淸溪書院)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정민(貞愍)이다. 슬하에는 이복(李宓, ?~1545), 이녕(李寗, 1527~1588), 이교(李㝯, 1531~1595), 이치(李寘), 이혜(李寭, 1543~1578)와 사위 최덕수(崔德秀[子粹])를 두었는데, 셋째 아들인 이교가 바로 이 일기의 저자이다. 이교는 자가 군미(君美)이고, 호는 원암(遠巖), 본관은 진보(眞寶)이다. 1531년(중종 26, 신묘)에 온계 이해의 아들로 태어나 계부(季父)인 퇴계에 나아가 학문을 닦았고 1578년(선조 11)에 벼슬길에 나아가 남부참봉(南部參奉)이 되었다. 1590년대흥현감(大興縣監)에 제수되었고 이후 1595년(선조 28) 9월에 병사하였다. 저서로 󰡔사서질의(四書質疑)󰡕, 󰡔경술일기󰡕 등이 있다. 하지만 이 일기를 언제 기록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1567년 10월 5일이후임에는 틀림없다.
이치(李致, 1504~1550)는 자가 가원(可遠), 본관은 덕수(德水)이다. 1522년(중종 17)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고, 1540년(중종 35)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그 뒤 성균관학유·사간원헌납 등을 역임하였다. 인종 초 을사사화를 일으킨 이기를 양사와 더불어 탄핵하여 파직시켰으며, 또한 외척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이기윤원형(尹元衡)이 이것을 원망하여 1547년(명종 2) 이기의 사주를 받은 이무강에 의하여 대역죄로 몰려 투옥, 장살(杖殺)되었다.
이기(李芑, 1476~1552)는 자가 문중(文仲), 호는 경재(敬齋)이고 본관은 덕수(德水)이다. 1543의정부우찬성에 이어 좌찬성·우의정에 올랐으나, 인종이 즉위하여 대윤 일파가 득세하자, 윤임(尹任) 등이 부적합하다고 탄핵하여 판중추부사·병조판서로 강등되었다. 이는 1545년(인종 1) 1월에 대사헌 이해헌납 이치(李致)등이 이기를 논박한 결과였다. 어린 명종이 즉위해 문정왕후(文定王后)가 수렴첨정을 하자, 윤원형과 손잡고 을사사화를 일으켰다. 이 때 윤임·유관 등을 제거하고, 추성위사협찬홍제보익공신(推誠衛社協贊弘濟保翼功臣) 1등에 책록되었고,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가 되면서 병조판서를 겸하여 조정의 대권을 장악하며 풍성부원군(豊城府院君)에 봉해졌다. 이어 좌의정이 되었고, 1549년(명종 4) 영의정에 올랐다.
구수담(具壽聃, 1500~1549)은 자가 천로(天老)이고 본관은 능성이다. 1534대사간에 올라 윤임(尹任)의 '대윤'과 윤원형의 '소윤'이 각기 당여(黨與)를 이루어 대립함을 지적했다. 결국 1546년(명종 1)에 파직되었다가 전라감사로 서용된 뒤, 1548년에 대사헌이 되어 권신 이기(李芑)를 탄핵하다가 삭직, 갑산에 유배되었다. 1550년 일찍이 유관(柳灌, 1484~1545)을 변호한 바 있다고 하여 윤원형의 사주를 받은 대간의 탄핵으로 사사되었다.
이무강1536년 별시문과 병과에 급제하여 정언, 장령, 직강, 집의 등을 역임했고, 1548년(명종 3)에는 사성으로 빈민구제를 살피기 위해 함경도 어사로 나갔다가 교리, 사간 등을 지냈다. 바로 이해에 사간으로 있으면서 이기의 사주를 받아, 구수담, 허자(許磁, 1496~1551), 송순(宋純, 1493~1582) 등이 을사사화(1545)로 유배당한 자들과 그 자손들을 비호한다고 탄핵하여 축출했고, 1550년(명종 5) 8월 이기이홍남의 사주를 받아 이해, 이치, 최창손을 무고하여 국문으로 죽게 하며 이기의 충견 노릇을 했다.
이 일기는 온계 이해이기의 무고에 연루되어 죽음에 이르게 된 사건을 아들인 이교가 기록한 일기로, 을사사화와 '벽서의 옥(壁書獄)'으로 불리는 정미사화 직후의 정치상황과 온계의 억울한 무고 사건의 경위를 자세히 알 수 있는 훌륭한 자료이다. 사건에 관련된 여러 인물들의 증언과 상세한 해명과 임금이 내린 전지(傳旨)의 내용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일기 가운데 실린 이해의 원정(元情)의 글과 중형(仲兄)인 이녕(李寗)의 상소문 그리고 이교 본인의 사실적 평가 등은 개인과 집안의 기록적 가치뿐만 아니라 사료적 가치가 높은 자료로 평가할 수 있다.
『을사사화』, 한국인물사연구원, 타오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차 작성자 : 박세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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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일기(庚戌日記)
嘉靖二十九年庚戌(明宗五年)七月十六日。
司憲府司諫院合司。午後。憲府書吏林殷孫來謁。家君卽親召見。殷孫進一札。視之云。兩司城上所入啓曰。漢城右尹李某前爲淸洪監司時。惟新逆黨漏落奴婢田畓等。本縣推刷牒報而還給本主。事甚駭愕。請推考治罪。家君曰。此事頃者屢出於臺論。而救之者尙多。沈而中止■…■云。故尋常危懼。聞汝之來。知我之事出也。顧謂子等曰。余昨昨以祭獻官受香事。■…■謂無乃我之事出。而如是其久。■…■自疑之心。而且聞兩司以具壽聃依律定罪事合司云。恐復余事或亦因此而發也。深用危慮。果不免。【前司憲具壽聃被竄。至是賜死。家君與此人。本無司惠。而心動異事。】卽命蒼頭邀禮曹正郞柳涉。欲與問議。而適値出他。未果。【淸洪監司時。柳涉爲都事。】
十七日。
推考傳旨下司憲府…柳涉來。家君問曰。逆黨漏落奴婢推刷時。予何以處之。柳公答曰。本縣推刷牒報令公擧而視之曰。田民則當籍其用。至於細鎖雜物則無益於官家。而徒貽弊於典守者。不如除去之爲愈。於君意何如。涉曰。令敎至當。令公遂命爻周。此實使無弊也。而不圖今日。反生後患。家君曰。計將安出。涉曰。宜以此答之。諸知舊來唁。因問事之顚末。家君答曰。惟新逆黨田民雜物本縣推刷牒報。予與都事相議曰。臧獲田畓則可。至於細鎖雜物。無補官家。徒遺煩弊。遂爻其不緊之物而已。禍生無妄。末如之何。三度抗答。諫院有一員曰。還給文書。惟新之倅。擧行之人。故有明見者。當致憑考。憲府卽以三懸鈴發送惟新。命營吏石球。持推刷文案及書目等來。【石球居惟新。故使之持來。】
二十二日。
石球自惟新。持文案直來于家曰。還給書目。千披萬得。終不見之。故其時文案專數持來。家君曰。汝何不直呈于憲府。而徑來見我。宜速進呈。球卽呈于憲府。憲府再三披閱。而文無還給之事。初兩司聞田民還給之時。家君在椒井。使石球題書目踏印。而捉致問之。【家君以微恙。浴于椒井。】則曰。球其時下番。且本爲吏房。其於田畓奴婢。各有戶刑之任。題書目踏印。亦有承發紙筒之色。非球所知。府以爲誣飾。捧刑問侤音。因下獄。府又以爲的有還給書目。而惟新隱而不送。以四懸鈴分送于監司道及惟新。
二十三日。
家君見領相李芑。以天變。【前二十日夜。暴風急雨。迅雷狂電。故及之耳。】上疏曰。臣居首相之位。不能燮理陰陽。進賢退不肖。以致天變之此極。請遞臣職。以答天譴云云。【追言具壽聃之事甚多。而忘未記之。】曰時事可知。自乙巳變亂以來。主少國疑。上不信下。下不信上。爲大臣者。當以保養君德鎭定人心爲務。而芑也貪權固寵。稔亂激禍。熒惑君聽。以重士林之禍。大臣之道固如是乎。㝯對曰。芑之此言。雖爲具壽聃而發。恐其爲大人之事而出耶。答曰然。夫豈徒言而已哉。
二十四日。
㝯黃聘君【允中】曰。予昨者往大諫家。【大諫乃元繼儉。聘君之四寸也。】問令公事。大諫曰。右尹與出此言者。得無有宿嫌乎。予曰。非也。右尹性素寬裕。豈復與人有隙哉。但其人聽細人之諜言云耳。大諫曰。非有宿嫌。何至於此極乎。吾等皆救之。而終不聽止。必有以也。彼雖搆陷。人皆愛惜而救之。是可喜也。㝯以此告家君。家君曰。大諫之言是矣。以李無彊凶險之資。當塗而姿行無忌。誰能禦之。【無彊時爲司諫。初與陳復昌同惡相濟之人也。疎薄正妻。湛于嬖妾。居於市路之傍。家君是年春。避寓西小門內時。常常過其門。而鄙其爲人。一不入見。一日會於闕內。無彊曰。令公過我門而不入何也。幸須惠然。家君曰諾。吾將歷見。終不肯見。由是遂深銜之。而且信反間之言。間言見下。】宋世珩【大司憲。】元繼儉雖與我素有分好。畏首畏尾之人。安敢抗爭。我本以無才德之人。累爲侍從臺諫。尋常愧懼。且遭時變。謀欲自全。而僻居深谷。【家在南山。朝市甚遠。】少有徵逐。今者禍生無妄。吾不知死所矣。
二十五日。
金九思來唁曰。宋大憲自前言於人曰。右尹何不來見我。詳言其事云云。令公盍往觀乎。家君曰。不可。予之事難以口舌爭也。而其門車馬騈闐。少無從容。一往未出言。再往三往則不亦鄙乎。不亦苟乎。況生我殺我之權。亶不在大憲乎。大憲之欲見我。我亦曾已聞之。玆用不往耳。【先是。掌令李喜孫來見家君曰。令公事屢出言席。而賴諸僚之力救。勤得中止。令公何不早圖。答曰。予亦知之。事已至此。奈奈何。】
二十九日。
石好謙【石球之子】。來謁曰。昨夕惟新文案到府。而還給書目又不得。且曰。使道浴于椒井之日。未能記憶。家君曰。予前年六月二十六日往于椒井。【椒井在淸安縣。】 至七月初二日還淸州。逆賊田民推刷自五月始。至八月乃畢。安有漏落奴婢推刷先於元推刷未畢之前乎。【田民推刷後。聞亦有漏落者。故復命加推刷。】 好謙曰。小人父其時下番之日。無以發明。故前年上下番馬文字。專數取來考見。則六月二十五日下番。八月初五日上番。陪行椒井之事。不攻自破。因憤憤曰。若非此文。難以發明。豈有如是曖昧之事。家君曰。然則臺諫之言。豈不謬哉。持此文則庶可以自明。然自己酉年。始立營吏遞番時毋得濫騎驛馬之法。【雖有此法。營吏等非驛馬則未能趁時遞番。故是時諸道皆不遵行。】當此吹毛求疵之時。不無以此形諸罪目。愼勿輕進。徐觀其變。勢將不得已後進之。顧謂子等曰。予常疑昔日之忠厚詩人。或有罹譖畏譏。言詞大過。今我思之。實獲我心。
八月初二日。
兩司以拜表會于慕華館。持監司道文案來者。直呈于兩司會處。卽開閱之。無田民還給之事。只有呈琅【毛山守名。逆賊之黨。】婢夫甫里金屬己私耕田還給之文及破瑣雜物爻周之簿而已。諸員皆曰不緊之物。而無彊獨曰。雖其槁芥。豈可遺乎。【私耕還田給之事。雜物爻周見在元情。】
初三日。
兩司合司。使奴義城往探于憲府。李都事【■■兄主聘君。時爲禁府都事。】來唁。家君曰。不仕則已。仕則不入于獄者幾稀。而我仕宦于朝二十餘年。曾不見獄。今將入矣。言未旣。義成急報曰。以下獄窮推入啓云云。一家驚動號泣。罔知所措。家君神色不變曰。毋驚動。我早知如此。卽馳詣義禁府下典家。待命。諸親舊皆來唁。家君辭之曰。公等交相出入。示人煩鬧。是重吾禍也。愼勿來往。又曰。使喚奴僕數三外宜速退去。夜二更傳旨乃下云。右尹李某前爲淸洪道監使時。惟新逆黨漏落奴婢乙。本縣亦推刷牒報爲良在乙。擅給本主。事甚駭愕。辭緣司憲府以捧傳旨推次抗拒答通傳播之言。慮有不實之端。本道監使及惟新縣等所藏文書取來憑考爲乎亦中。逆賊等田畓財物已現於推■。而還給本主者。果多有之。事甚無疑。逆賊籍沒乃所以徵惡人。人所共憤。必于一毫微物私與不得事是去乙。乃反如此至爲駭愕爲置。近來人心如此。不知君臣之義。不有君上。只用私情爲臥乎所。加于寒心爲昆。右良使內乎。辭緣窮推定罪爲只爲。下義禁府爲良如敎。○入西一間。【此間乃宰相罪輕者入處。】是時。李都事在本府。崔直長以本府先生。常常嚴敎下吏。故下吏不得肆其暴虐。其爲恩感實多。○前於十六日兩司以推考治罪入啓之時。李無彊直欲以與具壽聃同罪而啓之。皆曰不可。又欲以下獄窮推。皆曰不可。又欲以遠竄。皆曰不可。乃以推考治罪入啓。【無彊欲以遠竄入啓之時。衆皆許之。則安知其無此禍耶。此亦天也。】
初四日。
禁府堂上判府事尹漑知事朴守良尹元衡同知事沈光彦等坐起陳元情。【與後陳元情同。故不錄於此。】夕。兩司又論啓。【與傳旨同。故不錄。】 傳旨云。右尹李某。當爲近來人心不靖。邪論不殄。雖在宰相之列者。忘君護賊。無所忌憚爲置。常與具壽聃相爲朋比。其議論行事。無不與同。使是非顚倒。人心携貳。原其根柢。有自來矣叱分不喩。惟新逆賊等欲擧大逆謀。聚千餘人。其黨崔大受亦列書姓名。出回文知會。事覺伏誅。後其年秋。有人得其回文。將告變來京次。回文中名付人子弟路捕來京者。告訢于李致。致亦牒報。卽令刑推滅迹。凡告變之人。雖在尋常臣子所不敢經止是去等。況旀惟新逆賊段。前古罕有。人人所共痛憤。而所謂回文已現於逆賊之招。所關極爲重大。愚夫亦當知之是去乙。旣已沮遏。使不得上達。以致杖斃爲乎所。不知君臣之義。爲人臣子而忍護逆賊。其用心兇慝。與逆賊無異。至爲寒心爲昆。前下傳旨內辭緣。幷以窮推爲乎矣。司憲府以淸洪道取來文書乙良置。憑閱推鞠定罪爲只爲。下義禁府爲良如敎。○兩司啓請以前淸洪都事柳涉及前惟新縣監李致等幷下獄窮推。柳涉聞命就繫。李致以母喪居廬于長湍地。卽命都事拿來。淸洪監司金光軫及惟新縣監柳仲郢。皆以文書未卽上送事罷。○昏子等以兩司所啓事。欲親省于門隙。而府中多事擾擾。未果。
初五日。
罷漏後。子等進省于門。問曰。昨日所啓與具壽聃朋比告變人撲殺等語。何以對之。家君曰。非我所爲。豈可服乎。事已此極。無如之何矣。恐有漏泄。未敢展達。掩抑而退。○家君再陳元情曰。傳旨是白乎等用良推考次。嘉善大夫漢城右尹李某。年五十五白等。前後傳旨內辭緣是白沙餘良。司憲府以取來文書內。惟新逆黨田民財産等乙。差使員亦啓聞次。以推刷開錄牒報爲有去乙。罪人崔洽沈醬三瓮等物八件。安喜逢安喜遇破件交布直領一等物六件。安邁破件八升木綿襦中赤莫一等物六件。裴夢星破件空籠三等物二件。車獻之破件道豆音一浮等物六件。崔大受破件鞍子一等物十八件。李福基破件八升甘察交織襦天益一等物六件。崔大臨沈醬瓮二等物七件。李揮中件白獐皮靴一等物十二件。崔大觀平轎子一所入具等物三十九件。孫守恭破件七升木綿單直領一等物三件。延璦中件九升紫襦天益一等物十八件。禹守平破件鹿皮天益一等物十一件。康惟善破件十升草綠襦天益一等物二十九件。崔舜鶴破件布直領一等物十三件。李洪胤去核綿花入籠一等物六十七件。李有成破件空箱子一等物四件。崔大◘中件白苧布加可羅一等物十六件。孫守讓中件甘察木綿袷赤古里一等物七件。孫守儉中件甘察木綿襦直領一等物四件乙。擅自爻周還給本主叱分不喩。呈琅田十三庫乙。呈琅婢夫甫里金戶奴玉山等名字付稱云。還給辭緣幷以推問敎是臥乎在亦。矣身前矣。法司以捧傳旨緘問內淸洪監使時。惟新逆黨漏落奴婢本縣推刷牒報爲有去乙。令還給本主是如。推問敎等用良。右良使內乎所。無白乎。辭緣抗拒爲白有如乎節段。田畓財物乙。擅給是如。推問敎是白置。畓不喩田庫是白在果。矣身無端擅給爲白乎所不喩。差使員延豊縣監呂世琛牒報內。罪人呈琅婢夫甫里金戶奴玉山田是如爲白乎矣。呈琅己物與否乙。分辨不冬爲白有去乙。更良詳悉相考牒報。亦回送爲白乎亦中。更報內切鄰色掌等亦上項罪人呈琅母邊婢申今夫甫里金名字付某某字田幾卜束。奴玉山名字付某某字田幾卜束段。熟田以年年耕作所出乙。其矣上典呈琅處納上爲臥乎所。供招是白去等。右田等段。呈琅己物是白齊。同甫里金名字付某某字田幾卜束。玉山名字付某某字田幾卜束段。甫里金等亦續田以其等徒自己私耕田是白乎所。牒呈爲白良在乙。某某字田段。呈琅己物的實爲白在果。其餘田段。甫里金等自己私耕田是白去等。幷以屬公未穩爲白乎去。計料差使員所報貌如。本主是白在甫里金等還給亦回送爲乎事是白遣。罪人還給爲白乎所不喩是白齊。財物段置。差使員牒報公文乙。親自點檢爲白乎矣。關重之物以乎爲白在果。不緊細瑣破件雜物段。屬公後已爲官物是白在如中。或遺失或破毁。則典守者受罪生徵爲白沙餘良。守令遞代時解由幷錄傳與傳掌爲臥乎事是白去等。無用不緊之物徒爲官家貽弊叱分。妄料其中尤甚細瑣破件段爻周。啓本不錄叱分是白遣。本主還給爲白乎所不喩是白齊右良使內乎所。矣身昏妄錯料。施行遲晩叱分是白遣。他無情由爲白齊。凡矣議論行事乙。必須追尋往來。相交款密爲白良沙。吐情議論爲乎事是白去等。具壽聃亦自出身後二十餘年間。一不來訪爲白乎旀。矣身置。性本愚戅。孤陋寡合乙仍于。非但壽聃。他餘朋僚段置。矣身果相從交親者鮮少爲白置。況旀矣身去丁未年四月分黃海道監司除授。戊申年六月分遞來。同年十月分淸洪道觀察使除授。前年十二月分遞來。在京日月無幾爲白去等。具壽聃果朋比議論行事乙。無不與同。使是非顚倒。人心携貳爲白乎所。專亦無白齊。前年秋節分。惟新縣監李致牒呈內。崔賀孫稱名人亦兄弟不和罪。以義州入居爲有如可。無緣逃還縣土隱接。其矣田民相訟稱云。留連不歸是如。逃來辭緣推問爲良。結請報爲白有去乙。入居逃亡以依法刑問亦回送。後同縣監亦更報內。向前崔賀孫亦罪重入居人。以無緣逃亡情由刑問次。不干鄕中回文持是旀。告變爲乎爲。發惡拒招是如爲良在乙。假稱虛事。謀免重罪爲臥乎去。情狀過甚亦所言受理除良。前所報辭緣以刑推亦更良回送爲白有如乎。刑訊一次後。因病物故是如牒報叱分見知爲乎事是白遣。不小告變事乙。任情沮遏。使不得上達。以致杖斃爲白乎所無白齊。矣身本以無狀。誤蒙累朝恩私之濫。職至二品。區區微忱。天日照臨。但當夙夜恪謹。終始一心。欲效犬馬之勞。是臣所蘊是白去等。前古罕有大逆不道之類乙。必于切親交友之間是白良置。不容私情事良中。矣身獨亦不知君臣之義。不有君上。只用私情。忍護逆賊爲白乎所。情理萬無爲白良尒。相考分揀施行敎事。○推官曰。獄中或有內擲奸扞〖奸〗之時。不可忽也。遂移家君于重間。子等厚賂刑獄直。請脫縲紲 之具。獄直曰。雖不下敎。渠等何敢不然。卽以刀鋸。潛入而截去。
初六日。
家君因使刑獄直。遺書於子等曰。送爾妹於會賢坊。【妹之舅】。且爾庶母使之速歸黃州。爲可。【其本家】。都事拿李致。入來府。堂上上讞之曰。李某等罪狀關重。而府獨推問。未安。何如。啓。傳曰。三省交坐。可也。因命。委官左議政尙震刑房承旨金澍問事郞廳洪曇盧漢文。兩司各一員。與本府堂上。參鞠。【本府下吏及諸人皆曰。惟恐領議政李芑。以委官來也。而尙政承來。進賜主必無患。】 李致陳元情。以刑推入啓。傳曰。夜深。待明日。可也。【李致自昏陳元情。至夜四鼓乃畢。】
初七日。
三省交坐。大張威稜。反覆推問。家君及李致。以元情內辭緣。牢拒不服。遂受一次。推官入啓曰。傳旨內辭緣。忍杖不服。請加刑。傳曰。如啓。午後加一次。推官又請加刑。傳曰。明日加刑。
初八日。
又受一次。又請加刑。上特命時推照律。推官防啓曰。一罪之人。時推照律。古無其例。傳曰。然則待明日。人皆曰。三省交坐。則一日之內。刑訊至二三次。而於令公。則不然。是可喜也。是時。外議紛紜。或言承服。則可以生全。或言承服。則事將不測。人皆異口。莫適所從。此日。兄主歸水閣橋。與李都事崔直長。相議承服利害。不決而還。都事草上言曰。刑戮及事義禁府囚人李某子幼學李甯。右謹啓。臣矣段臣父亦寒門草士。以濫蒙國恩。侍從累朝。今已二十餘年。職至二品。榮寵俱極。常懷圖報萬一爲白如乎節。淸洪道觀察使時。無情失誤之罪。以已受重刑餘。命只在頃刻。父子之情。到天罔極。欲效緹縈之代。仰訢〖訴〗無路。尤于痛憫爲白置。臣父乙。惟〖維〗新逆黨田民還給是如爲白良置。奴婢段。擧論處無白在果。 田庫段置。無端擅給爲白乎所不喩。延豊縣監所報內。某某字田段。逆賊呈琅婢夫甫里金等矣贖起田是如。牒報據還給其主爲乎事是白齊。財物爻周事段。細瑣之物乙。不緊爲去。妄料叱分是白遣。還給本主爲乎所不喩是白齊。逆賊崔大受等緣坐人。不錄事段。【逆賊等妻子爲奴時。刑曹關內云。妻子女孫等幷爲奴。而後改關字。不及孫。故不錄其孫。而推問之時。以緣坐人。不錄爲問。不知何所據而云也。】 臣父亦專亦知不得爲乎事是白乎旀。告變人。刑訊事段。維新縣監所報內。徙民逃亡崔賀孫乙。逃來本家情由。推問爲良結。請報導良。依法刑問一次回下。後更報內。同崔賀孫亦不干鄕中回文持是旀。謀免重罪。告變爲良結。拒招是如云云爲白有去乙。臣父亦多事之中。初亦不干是如爲旀。徙民逃亡。以免罪設計丁寧爲去。妄料遽許刑訊爲乎事是白遣。撲殺事段。臣父知不得事是白齊。臣父乙。罪人具壽聃果。相爲朋比是如爲白良置。臣父亦性本疎迂。出身以後。衙仕外。未嘗投名尋訪爲白臥乎。衆所共知叱分不喩。自丁未年後。以出使兩道。在京日月甚少爲白去等。具壽聃果。論議行事。無不與同爲白乎所。極爲曖昧爲白齊。臣父亦必于無狀爲白良置。世居嶺表人。以逆黨人果。遠近族屬。專亦不干爲白去等。近古所無逆賊乙。雖至親間是白良置。庇護不得事良中。敢用行私情理萬無叱分不喩。萬一一毫是乃。私情所在爲白在如中。初亦財物爻周置簿冊乙。空然在置爲乎所不喩是白去等。妄量錯料爲白乎所。尤于判然於此爲白齊。況旀臣父在本道時。維新道中。所製律詩第一首云。形勝千年國。衣冠族姓鄕。陰謀方嘯聚。蓄孼久包藏。天討那能逭。身殃祗自將。金灘萬斛水。流惡與同長。第二首云。土地分割屬。山川幅裂疆。人民所共憤。草木亦懷傷。不飮盜泉水。回車勝母鄕。凶墟今在眼。我馬向何方。幷以二首段置。平生素志是白乎等用良。記行錄一冊內。分明手書爲白有去乎。同冊乙。特垂。睿鑑。庶明臣父之衷情是白齊。臣父在本道秋節分。百病具發。累次呈辭爲白乎矣。未蒙允兪。勉强驅馳之餘。精神暗耗。處置公事。錯誤必多。萬死甘受是白在果。今如聖明之下。凡罪之有重於臣父者。咸被寬典是白去乙。臣父段。實爲無情之失。以數多加刑爲白乎。第亦中如縷之命。必殞於杖下。獨未蒙天恩爲白乎去。父子之間。痛憫罔極爲白良旀。右良辭緣。分揀解冤爲白只爲。銓次以善啓。濟拔向敎是事望良白內臥乎事是亦在。謹啓年月日 ○家君氣候。稍有煩懣。
初九日。
鷄初鳴。㝯往李都事宅。昨昏。都事使人要㝯。都事曰。人皆以令公之不伏歸咎於我曰。何不使之速服乎。我則未詳其承服之利害。不可勸於令公。於君等之意如何。㝯對曰。不可。家君自昨。氣力困憊。若聞是言而傾心疑惑。則恐或難於勉忍也。若承服之後。禍出不測。奈何。都事曰。我亦知如是。故不敢强勸。都事又曰。昨。惟新縣監李忠男【代柳仲郢除授本縣】。惠書於我曰。僕入闕聞之。皆言令公承服。則必蒙天恩云云。此言之出處不可不知。㝯曰。忠男之言。何可信也。都事曰。固知忠男之素不信者。【忠男。搆陷權應挺應昌昆季之人也。】但欲知此言之出於信不信之處而已。君第往觀之。謝示喩之意。因問言根之所自出。㝯惟惟而退。還報于兄主。卽馳詣忠男之家。上手泣謝曰。某等蒼皇之中。罔知所措。昨憑示喩於李都事。乃知承服之善。感佩無極。但未知承服爲善之由。故敢問。忠男以手揮而止之。君何如是耶。何如是耶。吾亦何知。昨昨入政院。承旨金弘胤言之。而且領相及司諫【領相李芑。忠男之同壻。司諫李無彊。忠男之五寸侄。】。亦言令公承服。則猶可以生全云。又曰。我與令公相善。而今至於斯。安有如此。因泣數行下。㝯聞言之出於不信。而見忠男之詐泣。知其謀陷。不勝寒膽。卽退。具報于兄主。兄主曰。雖忠男之言。大不可信。親信之人亦有勸之者。子等聞此不達。而若有後悔。則奈何。反覆思之。未得其宜。書此兩條。使獄直入送取稟。家君曰。誣服而得生。我欲不爲。況未必生乎。食後三省交坐。家君旣受三次。氣力頓悴。勢未能復支意。且以爲必欲甘心而後已。至於臨訊。推官卽以傳旨內辭緣書供。使之着署。家君手自披閱。皆是一罪。回告曰。甫里金續起私耕田還給及破碎雜物爻周兩事。臣所錯料。自孼萬死是甘。至如忘君護賊。壽聃朋比。告變人撲殺。緣坐人不錄等。非臣之所犯。豈可誣服。但以不能忍杖。故欲服耳。拒而不狎。遂受一次。昨昨日。家君親製獄中上疏。使獄直示子等。見後還入送手書于貼裏下幅。至是出自懷中。願呈再三。推官竟不受理。【自乙巳之禍。推官庇護罪人。反遭其禍者衆。故也。】推官請加刑。傳曰。待明日爲之可也。朝呈上言于當直。直郞卽送政院。而適以位不齊不受。直郞又移送于本府。本府亦退。昏兄主及㝯往見李師聖。【師聖。李致子。正字也。】師聖曰。人言令公承服云。果否。兄主曰。家君今日氣候。難於復忍。故渠等稟以罪之輕者而服之矣。竟不服。師聖曰。伏之則不可說也。【是時。不信之人則勸之承服。固其宜也。而親信之人亦或有勸之者。此必不知事之輕重而然也。上疏遺失於獄中。故不得記焉。大綱與元情同。】
初十日。
三省交坐。受刑一次。李致受刑未半。殞絶。【李致與先君罪目雖有輕重。然大同小異。故同受刑次而先於殞命者。以其喪中故也。】承旨入啓曰。【此時公事刑房承旨。皆親自出納。】縣監李致。杖下殞絶。右尹李某忍杖不服。請加刑。上特命。減死。時推照律。【此必上聞李致之死。感動而然耳。】三省卽罷。【一家上下。喜感罔極。憲府書吏朴壽堅來言曰。此乃進賜主更生之時。誠可喜也。然今聞兩司詣闕云。毋妄輕喜。徐觀其變等。心甚嘉納。將恐將懼。使奴僕愼勿傳播。】禁府以杖一百流三千里照律分配于咸鏡道甲山。上再命。杖贖柳涉分配于全羅道某縣。【柳涉以都事不預其事。府獨推問而只受一次。越明年。放還。仕于朝。】兩司再以窮推依律定罪啓之。傳曰。近來如此之事。人多死傷。未安之心罔極。不須改之。皆不允。夜三更。宥旨乃下。奴義成等三人入間。奉負而出。以轎子奉輿止于咸末叱致家。【初欲出依東大門外金僉使祖母宅。而城門已閉。故未果。】家君雖經變亂縲絏之厄。精神無異平昔。凡上下見知之人。咸共慰賀曰。初見傳旨。無復可望。不圖今日天恩之至於斯也。答曰。大抵抑而揚之。亦是人君之度也。子等白曰。屢次酷刑之加。或不收拾神精。誣服其一罪之是懼耳。曰。始受初次之時。精神散亂。白日無光。非但當處之痛楚。滿身震懍。難可復忍。意以謂終始如此。則累次將何以能忍。自第二次奮志勵氣。酷杖雖下。別無苦楚。又曰。予初次不數杖。度之次第。自二次至終度。箇箇屈指計數。心如曙日。家君命兄主歸覲母主。展慰憂戀之苦。備留資之糧。俟秋冬之交。來寧于甲山。使㝯倍陪行。【先君在禁府時。禍將不測。人皆危之。李都事曰。我知令公德像。必不爲凶終。】
十一日。
罷漏後。出寓東門外金僉使宅。兩司連啓。上皆不允。都事禹彦謙使人來促發行。辭以窘急之中。路備未具。不行。都中知舊皆來見。自是夕。氣候未寧。
十二日。
都事又使吏促發。不得已以馬轎子發行。兩兄以數三日從行事陪去。㝯以明日束裝追到綠楊驛。故落後。【綠楊驛在楊州地。去京師一息。】行至五里許稅駕。氣候益艱楚。用自然汁和蘇合元以進。【崔直長黃聘君到此落後。】午後微雨。行到彌崖里。雨勢漸密。入村家因宿。兩司連啓。又不允。㝯夕拜別姊氏。因謁崔直長。直長曰。聞其行粮甚爲齟齬云。在路則猶可食。到甲山誰其資之。對曰。傾家買賣。勤得數石之粮十匹之木。更無如之何。以是家兄隨後備來矣。直長曰。雖從後運粮。安能繼給。因惠行具甚多。【先是子等檢理本家所儲之物。米不滿二斛。木不過十匹等。以謂大事朝夕當出。而家用甚不足。宜買賣家財。以備米木。卽傾家搜閱。無可賣之物。而只有采段三匹鹿皮一令。以謂賣此則猶可以備急。騷擾之中。忽焉見失。無可奈何。又相議曰。本家數小米木。經目費用。則後將奈何。家君奉養。宜以子等三家供之。下吏人情雜用。宜以衣服代給而專不用本家之所有。】
十三日。
留。都事使吏促發。以氣候未寧。固拒不行。罷漏後。領大孫等追到。諦審證候。已非前日。啑氣作撤無時。謂子等曰。我先君以啑氣終。伯兄亦以此終。而予今又得此證。恐不生也。又曰。人之將死。面必萎黃。眼睛直視。口角【忘不記憶。】。而今我如是。又欲省古詩而無一句得。因微吟一句。而子等未及詳聽。【兄主曰。似是大同江水何時盡。別淚年年添淥波之句。未及詳聞。平生之大遺恨也。】子粹兄主及㝯奉扶。而兄主奉藥餌勸進。家君曰。予今則證勢似弛。故欲嘗食味。汝等强勸苦藥何耶。兄主曰。證雖小弛。藥不可緩也。乃嘗之。連從自京來。【素知之人。】猝入而進曰。昨日兩司七啓。而皆不允云。【此人喜其不允之意而告之也。】家君曰。臺諫論啓。一日不過三四度。而今至七啓。則我事必不止。【家君自在京時。雖聞論啓之言。子等以停啓告之。至是復知之而甚疑惑。】子等對曰。連從謬聽而妄達。勿以爲慮。答曰。爾等終始隱諱。我愈疑懼。百般諫喩。終不解。夕廳事寒凉。移寢于房中。自是以後。言語始澁。氣息益急。沈綿不省。子等問證候何如。答曰。左膝甚冷。宜厚覆之。子等以手捫之。別無寒冷。以衣加覆之。且以溫手拊之。連進淸心蘇合元。曾無其效。家君曰。都事來耶。闕庭之問然乎。【疑是虛言也。】子等對曰。臺諫論啓。連從之妄言。豈有都事之來闕庭之問乎。勿以爲慮。曰。若來則爾將何爲。兩司連啓。皆不允。
十四日。
四更量。都事入城以聞。命漢城府檢之。【此地畿內十里。故漢城府掌之。】兩司始停啓。
十五日。
漢城參軍東部參奉出來。使下吏只見痕處之大小而退。還殯于東大門外僉使宅。本家及李都事宅有棺板。都事使木匠視之。皆腐破難用。使徐終求之。棺可合者貴。未買而還。
十六日。
主宅有造棺。而多有欠處不用。聞辛而慶兄家有棺。卽致而見之。短窄不可用也。成茂億斥等自禮安來言曰。察訪及豊基兩進賜主聞此奇。相議而敎曰。大事必出。若將不諱。喪行無所賴於官家。勢不可以成禮。莫如用權而來云云。等次問于億斥曰。此言是耶。斥曰。成茂親自受敎而來。斥則自榮川來。非所親聽。未知是否。等更問成茂曰。爾言果若是。則如此大事。叔主豈不書示乎。茂曰。此事何等。豈敢妄傳。丁寧受敎而來。崔直長李都事亦曰。此計得矣。兄主言於都事曰。用權之事。人子決不可爲之。豈可以窮迫忍爲此乎。都事曰。於公等罔極之情。用權未安之意。何可旣也。然爲今之計。當以便於遠致爲先。以雙駕馬轎輿行。庶無患於遠致。兄主曰。用薄板何如。都事直長皆曰。雖薄板。其重不小。崎嶇遠路。中途而車摧力困。則將若之何。且不知崔賀孫之子【先是先君發明告變人撲殺。故禁府以憑推事使拿來崔賀孫之子。而時未來。】來復何言也。禍若更起。則雖有棺何爲。獄事未畢。不可遽以成禮也。豊基豈偶然計而敎之以此乎。子等不獲已從之。
二十日。
發引。登舟于豆毛浦。朴公輔崔子粹兄相向哭別。
二十六日。
察訪叔主率奴馬來哭于金灘。【在■…■。】
二十七日。
下陸。
二十八日。
辛而慶李和甫兄來哭于水山驛。夕到長林。丹陽倅■■設供帳。欲行路奠。辭之以未安。卽命撤去。
二十九日。
逾嶺。榮川外叔主及李大容思擧兄李習讀來哭于腰院。先是欲於此院成禮矣。凡事不具。卒未能行。到昌樂驛。察訪鄭公淸欲行路奠。辭而過去。察訪再使其子弟追至懇請。乃使之奠焉。李甫卿兄主來哭于新院。至黑石。夜已三更。祖母宅行路奠。
九月初一日。
豊基叔主來哭于石峴。至檜川。全應房來奠。寘弟奔喪于丌峴。【時寘疥疾瘡疷滿身。寸步不能行。故未能遠來。而至是力疾來哭。】李子固大宇兄及琴士任來哭。午後到溫惠。
初二日。
入棺。成殯。
初三日。
成服。反柩時。用權之言。非叔主之敎命。乃其時反覆相議之言也。而蒼皇之中。成茂誤聽而妄傳。急亂之日。不肖子等。不識義節而妄從之。以遺終天罔極之痛。罪實在子等。萬死難贖。其後諸族侍。以治成茂妄傳之罪。
十二月十一日。
葬于燕谷乾來庚坐龜形之山。嗚呼。禍之作不作於作之日。必有所由起。我先君之禍。不作於淸洪監司之日。而胎於甲辰大司憲之時也。先君爲大憲時。駁李芑之爲相。芑也遂深銜之。越明年。仁廟賓天。群少交亂。而旋卽咸伏其辜。芑以國之元勳。乘其危疑。以報平日睚眦之怨。駁己臺官盡爲死徙。而惟先君及李潤慶【其時大諫。而含默不言其是非。】李致【其時獻納也。】勤得保全。至庚戌夏。潤慶見罷。而獨我先君及李致之免。人皆危之。此實禍之本也。而又有李洪胤家財籍沒後。厥兄前僉正洪男【洪男乃若氷之子。若氷被死後。洪男緣坐見逐。】言於李致曰。某某物洪胤之物。宜乎籍沒。某某物則本爲我物。不必幷沒。幸須見惠。有人以此告于先君。先君曰。洪男還推其物於何用之乎。以彼哉彼哉言之。此說傳播。洪男聞之。銜其非己。其後朝廷以洪男大義滅親。【洪胤之亂。洪男告之。】特命敍用。旣得志。嫌先君之言。譖于其妻娚元虎變。【正郞也。】虎變又譖于李無彊。無彊信虎變之讒。知李芑之怨。終煽此禍。人或有以謂先君不能見機而作。以遭此變。有不然者。當時只有洪男之事。則猶可以勇退。惟此李芑之事。出於不圖。方其駁芑之時。誰知遽至於鼎湖龍去。芑之恣行勢力也哉。此雖古之明哲保身者難處之事也。先君自乙巳以來。自知禍之不免。思欲引退而未得。黽勉從仕。嘗於丙午年間。將欲省楸受由。先辭於李芑。【大抵受由還鄕之人。先稟於宰相。然後呈受由狀。而退不可則不出。】然則受由尙不可得。況掛冠而退乎。是故先君有時乎忽忽不樂。仰天太息。憂形于色曰。仕宦而至二品。雖布衣之極。予無樂志。晩年欽羨李知事之高退。言之亹亹不厭。衙仕之外。小有徵逐。門庭寂然。至於子女婚嫁。如有媒者言宰相家。則辭而不許曰。履盛滿不止。人之所祟。方此危難之時。結於權勢之門。而恐其他日餘禍之相及也。一不見許。皆先君素志。而變生無妄。以至於斯。豈非天也。嗚呼痛哉。此事顚末。㝯等所不忘者也。第以歲久年深。恐其或忘。書而藏之。時維己卯仲秋也。
隆慶元年丁卯十月初五日。
聖上特命大臣。伸理乙巳以後被罪之冤。於是二品以上同議啓曰。李芑尹元衡之徒。懷夙昔之憤。乘先王幼沖。睚眦小憤。纖芥微嫌。必於此焉發之。一世端人正士。擧加叛逆之名。言之可謂於悒。請幷赦宥。上卽施恩典。雪冤伸滯。凡三十五人。而先君亦在原例。傳旨曰。李某前爲大司憲時。駁李芑。芑因此生憤。敎人誣告。其令吏曹還給職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