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아버지가 여러 가지 당부 사항을 전달하기 위해 科擧를 보러 간 아들에게 보낸 편지
12일에 아버지가 여러 가지 당부 사항을 전달하기 위해 科擧를 보러 간 아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자신이 功城에서 돌아와 보니 아들 일행이 이미 출발하였고 이미 科擧가 열리는 고을에 도착하였다고 하니 섭섭하면서도 다행스러웠다고 하였다. 그간에 이미 叔庚을 만났는지 묻고, 그의 안부는 또 어떠하냐고 물었다. 가을 기운이 생기를 되찾게 하였으나 아침저녁으로 출입하는 즈음에 약한 한기로 몸이 상하지는 않았는지도 물었다. 일행이 모두 별탈이 없이 도착하였으며 科擧 응시에 필요한 모든 준비물도 갖추었는지 물었다. 남에게 의지하여 기거하려는 생각으로 아들이 빈손으로 떠났으니, 안타까운 마음이 그지없다고 하였다. 자신이 功城에 도착하던 날에 바로 강 실이를 봤는데 風濕으로 인해 四肢의 감각이 없었던 그의 병이 이미 완전히 나았다고 하였으며, 사돈집으로부터 거처 및 음식 등 대접을 과분하게 받았다고 하였다. 사돈집에서 10여 일을 잘 지내다가 어제 省谷에서 돌아오는 길에 毛老洞의 山所에 성묘하고 돌아왔는데, 旅毒이 그다지 심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하였다. 이어, 집안사람들이 모두 평안하게 지내고 있다고 하였다. 자신이 善山에 있었을 때 들으니 試紙가 사방에서 공급되어 가격이 매우 헐한데 造紙署의 것은 가격이 1냥 반인데도 사려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머지않아서 1냥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했다고 하였다. 이는 대체로 금년이 式年에 해당하므로 寺僧들이 기한에 앞서 유념하여 일부러 많은 수량의 종이를 떠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寫手는 구할 방도가 있는지 묻고, 솜씨 좋은 寫手를 구할 수 없으면 스스로 試券을 작성하는 것이 낫다고 하였다. 수많은 사람이 있더라도 항상 자신이 있음을 알아서 몸가짐을 공경하게 하고, 科擧 결과에 대한 생각을 담아두지 말고 차분히 試題의 취지를 연구한 뒤에 글을 써 내려 가라고 하였다. 일을 도모하는 것은 사람이나 그것이 이루어지느냐는 하늘에 달려 있으니, 당락에 대해서는 신경 쓸 필요가 없을 뿐만 아니라 신경 써서도 안 된다고 하였다. 추신에서는, 致勤 및 李永進 형제도 함께 이 편지를 보게 하라고 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