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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이대영(李岱榮)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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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대영, 옥천문중
작성지역 경상북도 영양군
작성시기 1900
형태사항 크기: 21.3 X 45.7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양 주곡 한양조씨 옥천종택 /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900년 이대영(李岱榮) 서간(書簡)
1900년, 2월 17일 "세하생(世下生)"이라고 자신을 칭한 이대영(李岱榮)이 한양조씨 옥천(玉川) 문중에 보낸 편지이다. 1899년(고종 36)에 특명으로 옥천 조덕린(趙德鄰)이 복관(復官)됨에 따라, 분황(焚黃)의 예를 봉행하는 자리에 가지 못하는 탓을 자신의 포만(逋慢)함으로 돌리며 부조만 할 뿐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漢陽趙氏兵參公派世譜』,
1차 작성자 : 박세욱

상세정보

1900년, 2월 17일 李岱榮이 옥천 趙德鄰의 焚黃에 가지 못하는 마음을 한양조씨 玉川 문중에 전하는 편지
1900년, 2월 17일 李岱榮이 옥천 趙德鄰의 焚黃에 가지 못하는 마음을 한양조씨 玉川 문중에 전하는 편지이다.
편지의 내용은 간략하게 두 단락으로 나눌 수 있는데, 먼저 편지를 쓰는 목적에 대해 "斯文이 陽復하여 先 선생에게 직첩을 주라는 명이 내려왔으니, 무릇 선비들 중에 누가 기뻐하며 박수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追孝하시는 처지에 더욱 어떠하시겠습니까."라고 밝히며 상대의 안부를 전하고 있다.
또한 분황의 예에 꼭 가야만 하지만 가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을 "길복이 잘 이르러 焚黃의 예를 봉행하시는 이러한 때에 여러분의 생활이 더욱 신의 도움에 상응하시니 위로와 축하를 드리며 멀리서 미천한 정성을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저는 10세의 강송하는 정의로, 마땅히 찾아뵙는 날에 가야하나 지난번에는 이미 행하지 못했고, 이번에 함께 모여 경하하는 자리에도 가지 않으면 안 되지만, 이렇게 병고가 한꺼번에 밀어닥치니 바깥 예를 닦을 겨를이 없습니다. 이에 거듭 逋慢(이르지 못함)을 면할 수 없으니 저의 지극한 한스러움을 어찌 우러러 용서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며 지극한 안타까움을 표현하며, 겨우 "密庵所에서 돈 2냥을 올립니다."는 정성을 표하고 있다.
발신자 李岱榮의 사적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신축년(1901) 11월 1일에서 12월 22일까지 도산서원 상덕사에 모셔진 퇴계선생의 위판을 도둑맞은 일에 대한 顚末을 기록한 『陶山書院廟變時日記』 12월 16일 부조한 사람들의 명단을 보면 "日直 李岱榮 琦榮聯札, 宻庵所扶助三两."이라고 되어 있다. 따라서 李岱榮일직에 살았고 그의 아우는 琦榮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여기의 경자년1900년임을 알 수 있다. 『고전자료총서 82-2 광산김씨 오천고문서』(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2)에 따르면 을미년(1895) 2월15일에 쓴 편지에 "武陵所에서 두 냥을 바친다"는 정보를 보건대, 여기의 密庵所 역시 문집을 간행하는 것과 같은 역할을 하는 장소로 보인다.
『漢陽趙氏兵參公派世譜』,
1차 작성자 : 박세욱

이미지

원문 텍스트

1900년 이대영(李岱榮) 서간(書簡)

斯文陽復。
先先生給牒之
命載下。凡在衿紳孰不
欣抃。矧惟
追孝之地。尤當何如哉。
吉卜利屆。奉行
颺黃之禮。伏惟此際
僉體動止。益膺休相。
區區慰賀。不任遠忱。世
下生講誦十世之誼。合
有造門求謁之日。而前旣
未遂。今於齊會同慶
之席。又其不容己者。亦
此病故相仍。無暇爲外
禮。玆不免重其逋焉。私恨
之極。
豈望 俯恕。餘不宣。伏惟
僉察。
庚子 二月 十七日。世下生 李岱榮

再拜。
密庵所文二兩汗呈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