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1월 16일, 鄭建模가 형제의 大祥을 위로하기 위해 보낸 편지
1926년 1월 16일에 鄭建模(1866~1935)가 형제의 大祥을 위로하기 위해 注谷의 漢陽趙氏 측에 보낸 편지이다.
편지 내용으로는 먼저, 형제의 大祥을 맞이하여 슬픈 마음으로 지내고 있을 상대방을 위로하고 마음을 너그럽게 하여 일상생활에 해를 입는 데에 이르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이어서 상대방의 조카와 가족들의 안부를 묻고 슬프고 그리운 마음을 전했다. 자신은 평소에 상대방 집안과의 정분이 두텁다고 생각했는데 근래에 그것을 저버렸다고 하면서, 仲氏兄이 고향에 돌아온 뒤에 늘그막에 함께 하기를 바랐는데 갑자기 유명을 달리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마땅히 달려가 벗을 잃은 슬픔을 쏟아내야 했지만 자신도 몇 년 전부터 거듭 상을 만나 조문할 겨를이 없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지금은 겨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감기를 앓아 갈 수 없고 아이들도 갈 수 없어서 자신의 마음을 엮어 조카(述模의 아들인 輝喆)를 보내 대신 영궤 앞에 고하니, 감히 용서를 바랄 수 없다고 하였다. 편지 말미에는 제사를 잘 지내기를 바라고 상대방의 강녕을 기원하면서 편지를 마쳤다.
이 편지의 발급자인 정건모는 본관은 東萊, 자는 可範, 호는 匏山이다. 父는 翼煥이며, 英陽 蓮塘에 거주하였다.
정건모는 편지 끝에 스스로를 ‘戚弟’라고 칭했는데, 그가 한양조씨 彦謙의 딸과 혼인하여 상대방과는 서로 인척 관계에 있으며 비슷한 연배이기 때문이다. 또한 편지 내용 중에 大祥의 당사자인 고인을 ‘仲氏兄’이라 칭하였으므로 이를 통해 고인은 상대방에게는 둘째형이자 자신에게는 비슷한 연배의 인물임을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벗을 잃은 상황을 의미하는 ‘寢門[師吾哭諸寢 朋友吾哭諸寢門之外]’과 ‘喪質[自夫子之死也 吾無以爲質矣]’이라는 단어를 통해서도 두 사람이 서로 벗이었음을 알 수 있다.
1차 작성자 : 서진영